본문으로 바로가기
반응형




언젠가는 꼭 읽어봐야할 책이라 생각했던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 대한 리뷰입니다.


Aldous Leonard Huxley (올더스 레너드 헉슬리,1894 7 26 - 1963 11 22)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저자 올더스 헉슬리는 소설, 수필, 시와 기행문 등의 각종 다양한 문학 분야에 진출한 영국의 작가이다. 그의 소설에서는 사회에 대한 고찰과 비판적 요소가 상당히 드러남을 알 수 있는데, 본 독후감에서 다루는 멋진 신세계도 이와 같은 주제를 담고 있다.









책을 읽고 얼마 후에 네이버 웹툰에서 같은 제목의 단편선 특집이 연재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웹툰이 나온 날에 제목을 보고 굉장히 반가웠습니다. '과학기술이 극도로 발전된 미래 세계에는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지게 될까?' 를 주제로 삼고 있는만큼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벌써 아홉 명의 작가분들이 작품을 올려서 17화까지 연재되었네요. 안드로이드, 인공 신체, 뇌과학 등의 과학적인 토픽을 다루는 웹툰인만큼, 감상 후에도 철학적인 고찰을 해보게 됩니다. 

시간 나는 분들은 꼭 한번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대체 어떤 소설이기에 제목을 모티브로 딴 웹툰까지 나오는 걸까요?


 



 이제부터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본 책의 원제는 'Brave New World' 입니다. 

흔히 '용감한'으로 해석되는 brave에서 어떻게 멋진 신세계라는 제목이 나왔는지 처음에는 갸우뚱 하기도 했는데요, 

사전의 도움을 빌려 고어적인 의미로 '멋진, 훌륭한' 이라는 뜻도 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말로 다섯 글자의 심플한 제목은 우리 앞에 훌륭한 유토피아적 세상을 보여줄 것만 같은 상상을 하게 합니다. 

이러한 기대도 잠시, 자동화된 인공수정 시스템 하에 사회 구성원이 제작되는 책의 도입부 내용은 제 상상을 산산조각 내버리고 말았습니다! 

한 때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되었던 최초의 체세포 복제 포유류 '돌리' 정도는 명함도 내밀기 힘들 정도의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멋진 신세계 속의 '제조 인간'들은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매 단계를 거쳐 가면서 '한 사람'이자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등급을 부여받습니다. 

이러한 등급에는 다섯 종류가 있는데, 각각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입실론'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가장 높은 알파 더블 플러스 계급부터 최하층인 입실론까지, 

이런 불합리한 공정을 그 누구하나 비판하는 사람이 없는 이 상황. 뭔가 이상하지 않으신가요?


이는 우리 사회의 큰 이슈중 하나인 '금수저 론'이 명명백백히 드러나는 구조와 유사하다 볼 수 있습니다. 

아니, 심지어 더 심각하죠. 아무리 개천에서 용나기가 힘든 시대라지만, 아직까진 노력 여하에 따라서, 혹은 개인의 운에 따라서 사회적 계층 이동은 어느정도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멋진 신세계의 계층 구조는 그야말로 요지부동이나 다름없죠. 


한 번 정해지면 땡! 너는 평생 최하층! 


얼마나 불합리합니까? 심지어 누구 하나 이를 타파하기 위해 나서지 않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사회 운동이 일어나고도 남을 이 세계의 평온함, 그 비밀은 바로 인공수정 시스템과 그 이후의 사회화 공정에 숨겨져 있습니다.

인공수정 시스템의 컨베이어 벨트를 지나가면서 병 속의 세포 중 일부는 백치화되는 과정을 겪게 됩니다. 인위적으로 산소 공급을 잠시 중단하거나, 온도의 변화를 주는 등의 방법을 통해! 그야말로 인간 제조공장이나 다름 없는 경악스러운 부분이었습니다.이 속에서 제조된 인간은 이후 양육 과정에서 본능적으로 멀리해야할 것들이 정해집니다. 




이는 1900'어린 알버트 실험(Little Albert Experiment)'라고 불리는 한 연구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900년대의 행동학자 존 왓슨(John Watson)이 주도한 이 실험은 역사 속에서 벌어진 비윤리적 연구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인간이 동물에게 공포를 느끼는 것은 본능이 아닌 후천적 학습에 의한 것' 이란 가정하에 이뤄진 실험의 내용은 정말 끔찍했습니다.

실험의 주대상인 아기, 알버트는 여러 종류의 동물을 접할 때마다 호기심을 내보였습니다. 아기가 보들보들한 동물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알버트가 특정 동물(쥐, 토끼 등)을 접할 때마다 연구자들은 장도리와 망치 등의 도구로 굉음을 내었습니다. 이는 아기가 감당하기엔 너무도 큰 충격이었고, 알버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종류의 털 짐승들에게 공포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솜뭉치에만 접촉해도 경기를 일으킬 정도였다니, 너무 잔인한 일이 아니지 않을 수 없습니다.

멋진 신세계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인공적인 사회와 정반대인 자연에 관심을 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꽃에 대한 혐오감을 조성시킵니다. 

어린 알버트와 같은 처지에 놓인 멋진 신세계의 아기들은 태어날 때부터 자연에 대한 감수성을 거세당하는 것입니다. 


안정적인 신세계를 유지시키기 위해서라는 미명하에 말이죠.




멋진 신세계의 시민들은 정기적으로 '소마' 라는 일종의 마약을 지급받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현실 세계의 마약처럼 병들고 피폐해지지 않는다는 점이죠. 론 지나친 과량을 장기간 복용하면 중독증상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소마를 섭취한 사람은 극도의 행복감을 느끼게 되며, 어떤 불쾌감도 소마 한 알이면 모두 다스리고 진정시킬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멋진 신세계에서는 '너도 나도 모두의 것' 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개방적인 관념을 넘어서서, 서로의 몸은 서로의 것이고, 서로의 몸을 탐닉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행위라는 전제가 사회에 널리 깔려있습니다. 작중에서 남녀는 어린 나이부터 자유롭게 관계를 가집니다. 물론 외모와 지위에 따라 만나는 사람은 지극히 달라지게 됩니다.

원초적인 인간의 본능을 모두 충족시키는 사회, 이는 사회에 대한 불만 요소를 모두 제거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일종의 우민화 정책이나 마찬가지죠.




 저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행복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멋진 신세계에서 볼 수 있는 대중은 적어도 외면 상으로는 행복한(혹은 만족한) 삶을 살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렇다면 모두가 행복을 누리는 멋진 신세계는 그야말로 인간을 위한 유토피아가 아닐까요? 

저자의 의도는 '멋진 신세계'처럼 변모해가는 우리 사회를 비판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왜 멋진 신세계가 나쁜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판단할 자격이 있는가?' 라는 의문이 머릿속에 끊임없이 맴돌았습니다.

이 의문에 대해 스스로 답하기 위해선 더욱 많은 경험과 지식을 쌓으며 제 자신을 성장시킬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나아가는 세상이 긍정적 의미의 '멋진 신세계'가 아닌, 

반어적 의미의 '멋진 신세계'가 되어가고 있진 않은지 한 번쯤 재고가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여러분도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