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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을 읽은 후에.

 주인공인 '나'와 나오코, '나'의 친구이자 나오코의 연인인 가즈키, 이야기는 이 셋의 삼각관계로 시작된다. 단순히 한 사람을 좋아하는 두 명으로 이루어진 삼각관계가 아닌, 이들 세 사람은 우정에 조금 더 가까운 형태의 모습이다. 이 단단한 트라이앵글은 기즈키의 자살로 균열을 일으킨다. 한 축이 붕괴하자, 도형은 더 이상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나오코 역시 그대로 무너져내리며 모습을 감춘다. '나'는 여기서 처음으로 상실의 아픔을 겪는다. 두 축이 사라진 삼각형은 더 이상 도형의 형태를 갖추지 못한 채, 점의 형태로 남는다. 왕래의 통로 역할을 하는 세 변이 사라져버린 삼각형은 외로운 꼭지점만을 남긴다.

 나오코와의 재회를 계기로 '나'는 나오코와 다시 직선을 잇는다. 처음 둘의 모습은, 과거의 기즈키와 함께 형성한 삼각형의 잔여물 정도로 작용한다. 한 축이 빠졌기에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삼각형이 형성될 가능성을 만들어간다. 마음의 병으로 모습을 감춘 나오코를 만나러 간 '나'는 요양지에서 새로운 삼각형을 만들게 된다. 레이코는 나오코와 '나'의 직선에서 새롭게 나타난 축이 되어, 다시 삼각관계를 만들어낸다. 깊은 정서적 유대와 교류를 통해 또 한번 굳건한 도형을 만들어낸 것이다. 가즈키와 만들었던 도형은 이제 그 흔적만이 엷게 남아있지만, 나오코와 '나'의 직선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삼각형이 형성되었다.

 결국 나오코는 자살을 택한다. 기즈키와 함께 만든 삼각형은 나오코에게 있어서 삶이였고, 인생이었다. 삼각형의 전체가 100이라면, 나오코의 삶에서 기즈키와 자신이 각각 40, '나'는 20 정도였다. 레이코는 연인인 가즈키를 대체할 순 없기에, '나'는 나오코의 삼각형에서 20 만큼을 더 채워줄 필요가 있었다. '나'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그 20의 할당량은 '나'에게 있어서 버거웠다. 나오코는 '나'에게 그것을 강요하지 않았고, '나' 역시 억지로 그 빈자리를 채우려 하지 않았다. 나오코가 '나'에게 기즈키 만큼을 채워줄 것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나오코의 빈 곳을 비집고 들어갈 만큼 적극적이지도, 그 삼각형을 스스로 깨고 나갈 정도로 저돌적이지도 않았다. 나오코가 세상을 떠나고서야 깨어지게 된 삼각형은 영구적인 빈 공간을 가지게 되었다. 레이코와 남겨진 하나의 직선은 계속 존재한다. 그러나 '나'와 레이코가 관계를 가지는 것은 삼각형에 대한 고별의 선언이다. 한 축이 사라진 삼각형에 대한 이별이자, 앞으로는 새롭게 삼각형을 만들지 못함에 대한 작별이다.

 축은 영원하지 않다. 삼각형은 언젠가 무너져내린다. 축의 죽음과 이별, 관계의 단절, 수많은 가능성들이 삼각형 내부에 존재한다. 레이코에게도, '나'에게도 삼각형의 붕괴로 남게 된 마음의 공허는 평생 자리한다. 한 형태로 굳어져 다시 바로 잡지 못하게 된 뼈의 골조와 같이, 두 사람에게는 잊지 않을 것이자 잊혀지지 않을 것인, 무너져내린 삼각형의 흔적만이 그대로 남아 있다.
 삶에서 '얻음'은 확정되어 있지 않지만, '잃음'은 필연적이다. 사람은 언젠가 가족을 잃고, 연인을 잃으며, 친구를 잃고, 마침내 자기 자신을 잃는다. 삶은 약속된 잃음의 연속을 전제로 한 얻음의 갈구이자 발버둥이다. 잃음은 자연적이고 필연적이나, 얻음은 선택적이며 자발적 행위를 요한다. 일련의 잃음들 속에서 하나라도 더 필연성을 만들어내기 위한 모든 행위들. 나는 이것을 삶으로 정의하고 싶다. 필연적이지 않은 행위를 행하고, 행할 수 있기에 인간은 스스로 삶의 가치를 증명한다. 잃음의 필연성을 인정하고, 내 삶속에 온전히 받아들일 때에 인간은 진정으로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삼각형을 만들어낼 수 있다. '나'와 필연성, 불필연성의 세 축으로 이루어진 삼각형을 만듦으로서 인간은 삶을 완성한다. 조금 삐걱거리는 불완전의 삼각형이라도 개의치 않아야 한다. 인간의 삶은 한정적이기에, 그것이 무너져내리기 전에 의식은 막을 내린다. 중요한 것은, 필연성을 인정함으로서, 그를 전제로 한 삶의 삼각형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늘도 마지막 도형을 쌓기 위한 연습으로서 수많은 삼각형을 만들고, 허물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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